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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Film

[영화리뷰] 파리, 텍사스

by Nineforone 2026. 3. 20.

<퍼펙트 데이즈>를 오랜만에 다시 봤기 때문에 <파리, 텍사스>를 보게된걸까.

<파리, 텍사스>를 보려고 <퍼펙트 데이즈>를 다시 본걸까.

 

 

빔 밴더스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호평을 받은 <파리, 텍사스>를 아직까지 안 봤었지만, 잊고 살았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cgv 앱에 들어갔고, 운명처럼 이 영화가 재개봉했다는 사실을 발견해버렸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예매했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끝나는 심야 영화였다.

 

여의도 오피스 답사를 다녀온지 4일밖에 안됐는데, 또다시 여의도로 갔다.

 

운전해서 여의도를 가는 것은 오랜만이었고

 

늦은 밤의 한적한 여의도 IFC 주변은 괜히 울적했다.

 


 

1. 시간 여행

 

1984년 영화이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이라 그 시절을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이 시기 향수가 불러일으켜진다.

 

시간을 뛰어넘는 감각이 분명히 느껴지는 영화가 감동을 준다.


2. Root

나는 수미상관을 좋아한다.

 

생략과 함축이 담긴 poetic 한 수미상관을 좋아한다.

 

그런 수미상관이 완성될 때, 전율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수미상관이 구현된 영화는, 주로 뿌리를 찾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미친 놈 같기도, 구도자 같기도 한 트래비스에게서 나를 겹쳐보게 된다


- 되찾기 위한 길

 

트래비스는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

 

아들의 나이도 잊었고, 텍사스의 황무지를 걷고 있는 이유도 잊었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전부 잊어버렸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을 때 말한 한 단어가 "Paris" 이다.

 

 

트래비스가 잉태되었을 수도 있는 곳, 사랑하는 가족과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오래 전에 매입한 곳이다.

 

프랑스의 파리가 아닌, 텍사스 어딘가에 있는 파리이다.

 

그는 마치 잊어버린 기억, 아니 어쩌면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 위해

 

그 단서를 찾을지도 모르는 뿌리를 찾아 하염없이 걸었던 것처럼 보인다.

 

기억을 되찾기 위해, 사랑을 되찾기 위해


- 외면하고 싶은 죄책감

 

하지만 그는 잊지 않았다.

 

내가 그였다면, 4년이 흐르는 동안 단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독한 여정은 스스로에게 내리는 형벌과 같다.

 

잊었다고 말하며 자아를 죽인다.

 

 

나도 그러하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감정의 소용돌이를 외면한다.


- 용기가 필요할 뿐, 결론은 이미 알고 있다

 

Paris......Texas. Not Paris, France

 

 

왜 하필 파리, 텍사스를 찾아 걷고 있었을까.

 

겨우 기억해낸 듯, 트래비스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난 곳이 파리, 텍사스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그걸 농담 소재로 자주 썼다.

 

사람들이 아내가 프랑스 파리 출신이라고 오해하게 만든 뒤, 텍사스의 파리라는 것을 알려주는 식으로

 

하지만 트래비스는 겨우 기억해낸 것이 아니다.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과오를, 그리고 자신의 과오를.

 

아들 헌터에게 털어놓은 아버지의 농담의 진위는,

 

Self confession 이었다.

 

 

He had this idea about her and he looked at her, but, he didn't see her.
He - he saw this idea
- and he told people that she was from Paris.
It was a big joke.
He started tellin' everybody all the time and finally it wasn't a joke any more.
He - he started believing it.

 


3. 자기 고백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이 영화를 만들고 싶다.

 

 

연인과의 이별은 흔하디 흔하다.

 

하지만 진짜 사랑과 이별하는 일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흔했다면 예술의 소재가 될 이유가 없으니.


 

깊고 순수한 사랑은 구구절절하지 않다.

 

사랑이 이성과 감정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개념이라면, 설명은 불필요하다.

 

이렇게 사랑했고, 저렇게 싸웠고, 이러저러해서 헤어지게 됐고, 서로 없이는 죽고 못살아서 다시 만나게 됐고...

 

부연 설명이 사랑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순간, 영혼이 더럽혀지는 느낌이다.

 

감정을 기억하고 분석하는 것은 전부 허상이고 기만에 불과하다.

 


 

독백을 끝으로 재결합이 아닌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 결말처럼

 

나도 그런 시작 속에 있는 것 같았고

 

여운이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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