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ive

군 복무를 하던 2022년, <한비자의 관계술>이라는 책을 읽었다.
막연히 인간관계론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이다. 오랜만에 연애를 시작했었고, 다양한 인간군상을 경험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물론, 각종 관계론에 대한 한국 책들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어렸던 나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실망에 가까운 감상을 가졌다.
특히 정신과 의사, 전문상담사, 종교인, 강사 등등 각종 타이틀을 내세운 책들은 중심이 잡히지 않은, 편협하고 기술적인 내용들밖에 없다고 느껴졌다.
그에 반해, <한비자의 관계술>에 담긴 내용은 하나의 대전제로부터 차곡차곡 쌓이는 논리구조가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아래에서 그 대전제에 대해 설명하겠다.)
3년이 지난 지금, 솔직히 세부적인 내용 자체가 압도적으로 와닿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의 새로운 챕터에 들어서고 있는 지금, 좋은 인상을 남겼던 이 책을 차근차근 읽으며 다시 정리해보고자 한다.
법 法 세 勢 술 術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불리는 한비는 법가의 법, 세, 술을 계승하여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하였다고 한다.
법과 권세만으로 신하를 부리고 백성을 다스릴 수 없다는 춘추전국시대의 경험적 판단으로부터 술術이라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 핵심인 것 같다.
21세기에 사는 현대인이 군신 관계에 대한 방법론을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한비의 인간관계론에 있다. 그는 모든 인간관계를 철저한 이해관계로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부부지간도 이해관계가 얽히며 형성된 인간관계로 본 그가 훨씬 철저하게 남남인 군신 간의 관계에 대해 방법론을 정리했다면, 분명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얻어갈 것이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인간관계를 계약 관계로 규정하는 대전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비록 군신관계를 주로 다룬다고 한들, 독자에게 - 가깝게는 사장과 직원의 관계, 멀게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 더 나아가 모든 인간관계 등 - 으로 치환하여 읽을 재량이 생긴다는 것이다.
나는 당장 위기를 겪고 있는 인간관계가 없다. 재정의가 필요한 인간관계 또한 없다. 문제가 없으니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시 읽는 것이 아니다.
그저 Liminality 에 놓여있는 시기 속에서 앞으로 닥칠 일들을 분류할 수 있는 머리 속 책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서론이 길었으니 오늘 읽은 내용 중 정리하고 싶은 내용으로 바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3장. 가까운 곳부터 살피는 자기관리의 술
실력이 먼저인가, 포장이 먼저인가
- 서울대 친구와의 대화
오랜만에 만난 서울대 친구가 교수님으로부터 들은 내용을 내게 들려주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가 흔들리는 이유는 - 나는 여기서 말을 끊었다. 어떤 흔들림을 말하는건지 물어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 전반에 깔린 풍토를 가리킨다고 답했다 - 자기를 포장하고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한 세상이라고 한들, 본질을 잊고 포장하는 것에만 매달리는 세태가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쉽거나 학점을 잘 주는 강의만 골라들으며 학점 관리를 하고, 더 좋은 곳에 진학하기 위해 또는 취업하기 위해 스스로를 포장하기 급급한 면 등을 언급하셨다고 한다.
당연히 학점을 관리하고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실을 다지지 않고 형식 맞추기에 급급한 기회주의·결과지상주의를 경계한 것이다.
아마 이 친구는 이 얘기를 해주며 나를 시험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본질을 잊은 사람인지, 본질을 알고 있는 사람인지.
- 본질이 무엇인가
나는 내 스스로 포장을 잘 하면서도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포장의 기술은 나쁘지 않지만, 포장 할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3, 4년 전에는 포장 할 최소한의 실력을 키우는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1, 2년 전에는 무조건 포장을 잘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쉽게 말해서 어떻게든 용의 꼬리가 되면 내실을 다지는 것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과, 뱀의 머리라고 한들 실력을 확실히 다져야만 결국 용의 머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의 차이이다.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히는 본질이란, 잊지 않고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자세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잊지 않느냐 함은 결국 메타인지를 가리킨다.
- 메타인지

1.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 현재의 나를 바라본다. (반성)
2. 미래의 나를 떠올리고, 현재의 나를 바꾼다. (함양)
3. 현재의 나를 보고, 과거·미래의 나와 비교한다. (예측·분석 그리고 포장)
순서는 상관없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현재라는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을 가리키는 '현재'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이 순간을 어떻게 정할 수가 없다. 1초로 할 것인가? 1분으로 할 것인가?
결국에는 연속적인 (또는 순환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우리는 존재할 뿐이다.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것일 수도, 이미 결정된 미래가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이상적인 미래를 상상하며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을 기만하고, 속이는 졸열한 마음을 통해 이익을 탐하는 것이 반드시 벌 받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의 세태와 옳고 그름에 대해 논할 마음이 내게는 없다.
그저 개인의 입장에서 교묘함이든 정직함이든 뭐든간에,
스스로에게만큼은 항상 솔직하고 떳떳하려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1편 마무리
쓰다 보니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하나도 쓰지 못했다.
3장을 읽다가 친구와 최근에 나눈 대화가 생각이 났고, 그로부터 떠오른 생각들을 두서 없이 늘어놓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요즘 들어 자꾸 주제가 되는) '떳떳함'이 되어버렸다. 다음 글에서 조금 더 책 내용 위주로 담아보도록 하겠다.
이번 편은 윤동주 선배님의 서시 첫 구절로 마무리해야겠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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